1. 책 정보
저자: 박권일
출판사: 이데아
출판일: 2021년 9월 13일
쪽수: 344쪽
2. 내용
한국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불평등이 아닌 불공정이다. 사람들은 불평등에 대해서는 참지만 불공저을 못 참는 기저에는 능력주의가 있다. 능력주의는 우월한 자는 더 많은 몫을 가지고, 열등한 자는 더 적은 몫을 가지는 것이 정의인 사상이다. 만약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의 몫의 차이가 없거나, 열등한 자가 많은 몫을 가져갔을 때, 부정의한 사태로 강하게 비판한다.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님을 이야기 한다. 능력주의는 정의를 가장한 부정의, 사이버 정의이다. 왜냐하면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당연시 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이 심화되면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된다. 능력주의는 기회와 과정의 근본적 불평등, 즉 '실질적 불공정'을 은폐하고 형식적 공정성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이런 문제의식,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활발히 논의되지 못한걸까? 첫 번째로 여전히 전근대적인 세습과 상속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에 가장 쉽게 맞서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능력주의이다. 두 번째는 능력주의를 대체할 만한 대안에 대해 진지한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어떻게 성과를 보상하고 자원을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 능력주의를 대체할 만한 대안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능력주의의 형성 과정
우리나라의 능력주의 형성과정을 살펴보자면 과거제도, 사회진화론, 입신출세주의와 교양물신주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과거제도를 살펴보자. 과거제도는 한국, 중국, 베트남만의 독특한 제도이다. 동시대의 다른 나라는 대부분 부와 명예가 세습적 권리에 의해 이어졌으나 동양의 세 나라는 세습적 권리에 관계없이 명확한 규정에 의해 능력으로 선발을 하는 제도이다. 한국은 고려 광종때 처음 제도가 시행되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음서제와 같은 세습제와 같이 병용되어 완전한 능력주의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과거제도는 조선시대에 와서 좀 더 개방적으로 변화하였다. 시험 응시 자격에 있어 양인 이상의 백성들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서얼차별이나 연좌제에 입각한 응시 제한이 있어 완벽한 개방은 아니었으나 일반 백성들의 신분 상승의 통로로 충분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법적으로 법제화된 신분은 양인과 천민뿐이었다. 양반과 같은 신분은 사회 관습을 통해 형성된 계층으로 가문에 과거를 합격한 사람이 있으면 그 후손들까지 세습이 되는 특징이 있다. 조선시대의 양반의 능력으로 획득이 가능한 측면과 세습이 되는 이중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과거제도의 능력주의 측면이 강했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의 세습적 측면이 강해지면서 과거제의 순기능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과거제에 합격한 자에게는 그들의 생산성과 관계없이 엄청난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경제학 측면에서 지대 추구에 가까운 것으로 현제에도 과거제도와 비슷한 양상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수학능력시험, 사법고시를 들 수 있다. 이런 양상은 도덕적 성숙, 신뢰, 현장의 암묵지, 숙련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에 고루 보상하는 대신, 단지 '시험 치는 기술'에 보상을 주고 탈락한 모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회로 진화하게 되었다.
- 사회 진화론
사회 진화론은 진화론을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원리로 이용한다. '자연 도태', '적자 생존'을 이용하여 능력자가 무능력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능력주의와 결합해 현실을 설명하는 원리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회진화론의 핵심은 진화에 있다. 사회진화는 자연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으로 국가의 개입을 불허하고 있다. 이는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펜서 이후 논자의 이념적 입장에 따라 사회진화론은 광범위하게 확장된다. 멜서스의 <인구론>에 나오는 생존 투쟁과 스펜서가 처음 사용한 적자 생존이라는 두 개념의 주된 적용 대상이 개인인지 집단인지에 따라 자유방임주의와 결합하거나 또는 제구주의, 민족주의와 결합을 하게 된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사회진화론은 부즈주아 계급과 제국주의 이데올로그들에게 논리적 설득과 도덕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이들은 자연적 도태설의 원리를 강조하고, 국가나 개인의 불평등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임을 말한다. 이런 열강들에 의해 사회진화론을 접한 일본은 개인주의 요소를 없애고 국가 주의로 변용시켜 국민들에게 가르친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기조가 되고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제국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회진화론은 진보와 진화를 동일시하는 오류 등으로 20세기에 많은 학자들의 비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통해 우생학에 강하게 결탁된 사회진화론은 학문적 입지를 완전히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진화록적 사고 방식은 현대에도 여전히 다양한 이념들에 침윤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에이블리즘(비장애중심주의)이 있다. 경제 생산활동에 참여가능한 신체인가 아닌가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것으로, 이는 능력주의의 경제적 합리성, 효용성이라는 당위에 생물학적 필연성이 겹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빈민구제나 복지정책을 자연도태에 개입하는 맹목적 행위라 비난한 멜서스주의자나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에 대한 지원은 부정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능력주의자들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이 능력주의는 변형된 사회진화론이라 할 수 있다.
- 입신출세주의와 교양물신주의
본래 입신이라는 말은 <효경>에서 비롯된 말로 자기 몸을 바르게 간수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학에서 '효'를 실천하는 방식중의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라는 의미로 입신출세라는 말을 만들었다. 입신출세가 가능하려면 근대적 교육제도가 있어야 하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우리나라의 근대적 교육제도가 형성되고 체계화되어 현재 대한민국에 이어지고 있다.
교양주의라는 말은 근대 일본의 입신 출세주의의 안티테제로 특권적 지위를 누리던 도쿄제국대학 및 경성제국대학에서 처음 나타났다. 이는 입신출세주의의 반작용으로 나타났으나 처음부터 강한 엘리트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역시 일본의 개념 그대로 한국에 전해지게 된다. 교양이 출세와 지위 경쟁의 도구이자 물신이 되면서 교양물신주의가 나타나는데 이는 한국에서 입신출세주의와 일체화가 된다. 이는 당시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격과 능력을 드러내는 징표이자 과시의 대상이 되어 '속물 교양'의 기원이 된다.